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될 수 없음을 안다. 고로 “나는 반페미니즘 사상검증에 반대한다.”

대한민국헌법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나는, 2016. 7. 11. 레플리카(Replica)를 스팀 스토어에 출시했다.

당시 나의 나라는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좌편향을 문제로 지적했다. 영화, 문학 등 다방면에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야권 인사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낸 예술인들은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었고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 국가에 대한 비판 혹은 이전의 민주 대통령에 대하여 호의적인 의도를 나타낸 영화는 그 제작에 참여했던 기업의 경영자가 퇴진 압박을 받았고, 코미디 프로그램의 정치 풍자 코너는 사라졌으며,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는 정부에서 영화표를 모두 수거해 가거나 악의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등 국가 전체적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불경시 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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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레플리카 출시 당시 시대적 상황(2017 BIC 강연자료 중 발췌)

레플리카는 이처럼 개인의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법치주의를 앞세워 폭압했던 현실에 관한 게임이다. 그리고 편향된 구조와 전체주의에 매몰되어 혐오를 강화하고 압제의 일원이 된 개인의 도덕성과 파시즘에 관한 이야기다.

레플리카를 출시한 이후, 국내 극우성향의 사이트에서는 내 게임을 “좌빨게임” 이라고 규정했다. 좌익 빨갱이, 즉 북한을 추종하고 공산주의를 경배하는 간첩이 만든 게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개꼴통 게임”, “만든 새끼 뭐하는 놈인지나 알고 싶다”는 비난 글과 리뷰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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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레플리카 출시 후 반응(2017 BIC 강연자료 중 발췌)

하지만 출시 초기의 이와 같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레플리카는 많은 성과를 보여줬다. IndieCade, IGF 등 국내외 인디게임 조직과 행사에서 수상의 영광을 얻었으며, 스팀과 모바일 플랫폼에서의 판매도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관련 링크) 특히 ‘라스푸틴의 21세기 재현’이라고도 불렸던 인형사 정부가 교체되면서 국내에서의 내 게임에 대한 평가도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더 이상 내 개인적인 사상과 신념으로 인해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위협받고 비난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전, 국내 게임사이트에서는 나를 “메갈”이라고 다시 규정했다. (관련 링크) 내 트위터 활동 내역을 확인한 바, 페미니즘과 관련된 뉴스를 리트윗 하거나 ‘마음에 들어요’로 지정해 둔 기록이 있다는 이유다. 위 링크에서 문제로 지적하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직장 내 성폭력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뉴욕타임즈 기사 마음 표시
  • 노키즈존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내용의 고함20 기사 마음 표시
  • 학교에서의 페미니즘 교육 필요성을 지적한 교사의 인터뷰 리트윗
  • “걷기의 인문학” 실비아 플래스가 열아홉 살 때 적은 일기 내용 마음 표시
  • 아이를 대하는 사회적 환경 차이에 관한 오마이뉴스 기사 마음 표시
  • 군대 내 구타와 불합리한 명령을 다룬 만화에 대하여 지적하는 트윗 마음 표시
  • 초등학교 성평등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오마이뉴스 기사 리트윗
  • 애니메이션 ‘빨간 구두와 일곱난쟁이’의 외모비하를 지적한 여성신문 기사 마음 표시

“[유머] [ 인디게임 개발자 SOMI ] “마음에들어요 “”라는 제목으로 게시된 이 글에는 총 91개의 댓글(2018. 3. 28. 현재)이 달렸고 그 내용의 대부분은 위와 같이 지적된 내용들이 내가 메갈이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메갈’이라는 단어가 통용되고 있는 의미를 고려할 때, 내가 과거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과 페미니즘을 표방했던 ‘메갈리아’라는 사이트에서 활동했던 사람이거나, 남성혐오 또는 여성우월주의를 위해 각종 범죄와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르는 자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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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유머] [ 인디게임 개발자 SOMI ] “마음에들어요 ” 게시글에 붙은 댓글 중 일부

내 트위터 사용 이력을 통한 사상검증 결과, 나는 아래 그림과 같이 “사실상 메갈로 확정”되었고, 내 게임에 대한 리뷰에는 “쿵쾅쿵쾅 메갈손!”, “멧퇘지”와 같은 혐오표현이 게시되기 시작했다. (멧퇘지는 ‘메갈리아에서 활동하는 멧돼지’를 줄인 표현으로 그 움직임에 대한 비하의 의미로, ‘쿵쾅쿵쾅’이라고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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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나무위키 레플리카 소개글에 추가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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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레플리카 스팀 리뷰에 추가된 모욕적인 평가들
 

이와 같이 한 개인 게임개발자에 대한 사상검증과 사이버불링이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고자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게임업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들을 확인했다.

  • 2016년 모 게임의 성우는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기재된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자신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 게시했다. 여자는 가만이 앉아서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 사진을 본 일부 유저들은 게임사를 상대로 해당 성우에 대한 교체를 요구했다. 해당 티셔츠가 메갈리아 사이트와 관련있는 메갈리아4 페이스북 페이지의 후원을 위한 티셔츠라는 이유였다. 이후 게임사는 성우를,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여러분의 우려 섞인 의견들을 확인하였다”는 문구와 함께 교체했다. (관련기사)
  • 2018. 3. 25. 모 게임의 원화가가 개인 트위터로 여성단체를 팔로우하고 ‘한남’이라는 남성 비하단어가 포함된 글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일부 유저들이 항의했다. 원화가는 사과문을 게시하여야 했다. 해당 게임사 측은 원화가를 상대로, ‘왜 팔로우 했는지’, ‘왜 리트윗 했는지’ 등 개인의 가치관과 사생활 문제를 ‘심문’했고, ‘반사회적인 혐오 논리’, ‘변질되기 전 의미의 페미니즘’, ‘지속적이고 전사적인 교육’이라는 단어를 담아 그 내용을 공지사항으로 게시했다. (관련기사)

위 각각의 사건들은 구체적인 발생 경위에 다소 차이는 있으나,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특정 집단 혹은 조직으로부터 억압받았다는 것, 개인의 신념과 사상을 이유로 노동권과 인권을 침해 당했다는 것, 그리고 이 억압과 침해가 이를 지켜보는 다른 주변인들에게 유무형의 불이익을 두려워하게 하고 스스로를 검열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게임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나에게 기시감을 불러 일으킨다. 내가 레플리카를 출시할 당시 얻었던 “빨갱이”라는 낙인과 유사한 것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사찰하여 낙인을 찍는 과정은 게임 레플리카에서 잘 드러난다.

 [그림-6] 레플리카에서 주인공에게 빨갱이 낙인을 주는 증거_1(총3장, 1.페이스북 댓글, 2.페이스북 좋아요, 3.평가)

 [그림-7] 레플리카에서 주인공에게 빨갱이 낙인을 주는 증거_2(총2장, 1.체게바라 티셔츠, 2.평가)

 

즉, 1. 개인의 사상을 검증하고, 2. 빨갱이, 혹은 메갈이라는 단어로 낙인을 찍고 그 단어의 부정적 의미를 통해 개인의 사상 전체가 편향되었다고 호도하며, 3. 고용관계를 빌미로, 혹은 생존권, 노동권을 겁박하여 사상의 전향을 강요하고, 4.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조성함으로써 사상과 신념,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 이전에 자기 검열이 이루어지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활동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될 수 없음을 안다.

고로 “나는 반페미니즘 사상검증에 반대한다.”

반대의 입장은 한국여성민우회의 성명서 내용과 동일하므로 그 내용을 옮겨 적는다.

[한국여성민우회 입장문]

게임제작사 imc게임즈의 노동권 침해 및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규탄한다

3월26일 게임제작사 대표 김학규는 “사회적 분열과 증오를 야기하는 반사회적인 혐오 논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방지와 대책이 필요”하다며 자사 직원이 ‘여성민우회와 같은 문제가 될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 이유’를 추궁한 면담 내용을 공식적으로 게시했다.

0.

성차별에 강경히 반대하는 것이 ‘메갈’이라면 우리는 ‘메갈’이다.

가부장적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 ‘반사회적’이라면 우리는 ‘반사회적’이다.

우리는 ‘변질된’ 페미니즘과 그렇지 않은 페미니즘을 판별하여 ‘허락’하는 것을 거부한다.

1.

성우가 페미니즘 운동을 후원하는 인증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녹음 작업에서 하차했다.

캐릭터 작가가 페미니즘 관련 내용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캐릭터를 삭제당했다.

여성아이돌은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가 쓰인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베스트셀러인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SBS 라디오 작가가 ‘친 페미니즘’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며 하차 요구를 받았고 결국 부서를 이동했다.

우리는 지난 2년간 개인이 페미니스트인지를 판별하여 징계, 배제하는 작태를 수차례 목도해 왔다.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사과와 해명을 요구받고 불이익을 당했다.

한국사회는 더 이상 기존의 남성중심적 권력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행위를 용납해선 안 된다. 성평등과 인권이라는 근본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후퇴시키려는 시도를 거부해야 한다.

2.

또한 기업의 이윤추구는 양심·사상의 자유라는 민주사회의 기본 원칙에 위배되어선 안 된다.

사측이 직무와 무관하게 노동자의 정치적 입장을 검열, 판별, 검증하여 유무형의 불이익을 가하는 것은 노동권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3.

본 사건은 일회적 해프닝이 아니라, 게임업계의 성차별적·반인권적·비민주적 구조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한 회사의 대표가 한국사회의 성차별과 페미니즘에 대해 이토록 무지하며, 그 무지와 전횡을 공공연히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민우회는 게임업계의 노동권 및 인권 침해, 전반적 성차별 실태에 대해 면밀히 점검하고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들을 다방면으로 강구해 나갈 것이다.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싸움은 더욱 가열차게 이어질 것이며,

페미니스트들은 말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2018년 3월 27일

한국여성민우회 

아울러 다른 조직과 단체의 성명서 링크도 함께 게시한다.

 

* 위 내용은 내가 2017. 9. 15.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BIC)에서 “정치적 매체로서의 게임”이라는 주제로 키노트했던 내용과 현재의 소회를 함께 묶어 기록한 내용이다.

** ‘당신을 이나라 최고의 페미니스트로 인정합니다’라는 리뷰는 부정적인 의미로 작성되었어도 분명한 칭찬이다. 내가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기분 좋았다. 그리고 이 문장이 지극히 당연하게 칭찬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식있는 사회가 도래하기를 원한다.

*** 게임언론은 이 문제와 관련된 객관적 사실관계조차 보도하지 않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