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은끝내야하니까 를 출시하고…(2)

‘미끝하’의 스토리는 개발 당시 내가 읽고 보았던 영화, 소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플로리앙 젤레르 감독의 영화, <더 파더>에서 치매 노인의 뒤엉킨 기억과 왜곡된 현실인식이라는, 게임의 근간을 이루는 구성을 얻었고, 렌조 미키히코의 소설, <백광>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 가져 오는 반전의 매력을,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참자>에서는,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태도를 배웠다. (이외에도 대사의 계기가 되었거나 인용 출처가 된 작품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찾아 내고 유추하는 것 또한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임을 알기에 더 언급하는 것은 참는다.)

개발과정을 복기하며 개발자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되짚어 보니, 삽화 없이 활자로만 이루어진 게임의 시스템을 완성한 것이 2023년 8월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해 5월경부터 3개월 남짓한 기간동안 게임의 대부분을 완성했으니, 참 급하게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나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고, 이미지, 음악, 번역, 테스트 등 출시 전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데드라인이 코 앞인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급했다.

그리고 이제, 게임에 그림을 삽입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쉽지 않았다.

‘미끝하’ 전까지는 내 게임에 제대로 된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적이 없었다. 게임의 이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간단한 삽화 정도를 넣었을 뿐, 지금까지 인물의 얼굴을 그려 넣은 게임이 없었다. 나도 한때 만화가를 꿈꾸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재능 없음’을 인정하고 포기한지 오래였고, 지금까지는, ‘예쁜 그림이 없어도 기발한 아이디어와 이야기의 깊이를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며 나름의 고집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외주를 맡기거나 내 아마추어 같은 그림을 넣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런데 ‘리갈던전’의 출시 이후 내 견고한 고집겸 핑계에 균열이 발생했는데, 바로 쁘띠 데포토(Petit Depotto)의 ‘코토리(ことり)’씨 덕분이었다.

죄책감 삼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리갈던전’은 출시 직후 대중의 호응을 전혀 얻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만든 작품이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어 있는 것은 제작자의 입장에서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나는 개인이 할 수 있는 모든 홍보 수단 – 닥치는대로 쓰고 어디든 보내기 – 을 다 동원했기 때문에 달리 상황을 타개할 방도도 더 나은 선택지도 없다고 생각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코토리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리갈던전의 팬이라고 밝힌 그분은, 쁘띠 데포토의 ‘시고토(しごと)’씨와 함께 아무런 대가 없이 리갈던전의 일본어 번역을 전면 수정해 주셨고, 직접 일러스트도 그려 주셨다.

내가 창작한 인물들이 얼굴과 표정을 갖게 된 것을 보는 경험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드디어 내 게임 속 세계가 완성된 느낌이었고, 내 자식같은 인물들의 손목에 박동이 주어지고 숨이 불어 넣어 진 것만 같아 행복했다.

코토리씨는 키아트 외에도 여러 팬아트를 그려 주셨다. 리갈던전의 스위치판 퍼블리셔인 ‘플레이즘(Playism)’에서 홍보용으로 리갈던전과 레플리카 티셔츠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옷을 입은 인물들의 그림도 이렇게…ㅜ.ㅜ

이후 리갈던전은 일본의 인디 게임 퍼블리셔인 ‘플레이즘(Playism)’의 지원으로 스위치판으로 출시되었는데, 그 반응은 스팀판에 대해 냉랭했던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물론 플레이즘의 적극적인 홍보가 주효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런 온도 차이가 바로 코토리씨께서 만들어 주신 ‘얼굴’ 덕분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내 다음 게임은 반드시 얼굴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 것이다.”

이렇게 다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쁘띠 데포토의 응원과 지원이, 리갈던전을 통해 얻었던 경험이 미끝하의 인물들을 그리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데, 너무 장황하게 적은 느낌…)

54개의 삽화, 대화씬을 위한 인물 그림 2장, 타이틀의 그네 그림 2개, 엔딩에 들어가는 2개 컷까지 총 60개의 이미지를 그렸다. 사실 그렸다기 보다는, 60개의 화면에 점을 찍었다. 하루에 한 장씩, 혹은 이틀에 한 장씩 두 달간. 캐릭터별로 포인트 컬러를 지정하고 좀 더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여러 번 화사한 분위기로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색깔이 추가될수록 실력의 밑천이 드러나는 느낌이라서 최종적으로 흑백톤으로 결정했다.(적고 보니 해파리 애니메이션도 그렸어!)

서원이 모친의 행복한 얼굴. 미끝하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다.

참 잘 한 선택이었다고 느낀다. 도중에 여러 번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몇 번을 다시 그리고 찍은 점들의 못남에 우울해 하고, 없는 실력을 원망하며 후회했지만, 저 어색하고 이상한 비율의 그림이 마음에 남아 한참을 울었다는 리뷰를 보며, 아마추어 느낌 가득한 그림이지만 그래도 표정을 넣어 보려 노력했던 것이 참 잘 한 선택이었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