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의 여정, 그리고 IGF

2024년 1월 18일 스팀을 통해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를 출시한 이후, 작년 한 해 동안 ‘미제사건’을 통해 얻은 성과와 참석했던 행사, 새롭게 이어진 인연들이 모두 아름답고 소중했다. 또 언젠가 다시 새로운 게임을 출시하고 지난 경험의 발치에 닿을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 한들 이 행복했던 순간들을 대체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늦게라도 이렇게 기록하고 기억함이 마땅하다 느낀다.


출시 직후인 1월 19일, Steam ‘특집 및 추천 제품’ 배너에 ‘미제사건’이 ‘최고 인기 제품’이라는 태그를 달고 게시되었다. 2016년도에 ‘레플리카'(Replica)를 출시했을 때도 스팀 초기화면의 상단 배너에 소개된 경험이 있었지만, 인디게임이 스팀이라는 플랫폼에서 주목받는다는 것이 훨씬 어려워진 구조적, 환경적 변화를 감안하면 이전과는 전혀 달리 봐야할 업적이라 여겼다.


2월 10일 일본의 유명 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인 호시노 겐(Gen Hoshino)님께서 ‘미제사건’을 플레이하고 Instagram 스토리에 “すごく良かった”라는 평과 함께 게임 화면을 게시해 주셨다.

당시 넷플릭스를 통해 호시노 겐 주연의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재미있게 보고 있던 시기였고, 아라가키 유이님의 작품들도 매우 좋아하기에 게임을 통해 좋아하는 연예인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하고 놀라웠다.

이후 호시노 겐님과 DM도 주고 받게 되었는데, ‘유일무이한 게임 시스템’이라고, ‘새로운 게임을 기대한다’며 격려의 말씀해 주셨다. 메시지를 보낼 때는 번역된 한국어와 원문인 일본어를 병기하는 형식으로 보내주셨고 이처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쓰는 세심함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다정한 성품이 느껴졌다. 이후 팬심이 깊어진 나는, 호시노 겐님께서 출연하신 대부분의 작품들을 찾아 보고 음악도 듣게 되었는데, 결국 인스타그램에 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대한 스토리를 올릴 때마다 옆에 있던 딸 아이가 연신 이렇게 물어 보는 상태에 이르렀다.

“호시노 겐 아저씨가 스토리 봤어? 좋아요 눌렀어?”


5월 11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A MAZE./Berlin 2024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Most Amazing Award를 수상했다. 이 수상으로 인해 나는 A MAZE./Berlin의 심사위원이 되었고, 이듬해 개최된 행사에서 ‘Despelote’를 제작한 친구들에게 시상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6월 13일 영국 비디오 게임 전문지 EDGE에서 ‘미제사건’에 9/10점을 줬다. 이후 IGN ITALIA에서 9점, IGN KOREA에서도 9점을 연달아 받았지만 아쉽게도 Metacritic에 평점이 등록될 수 있을 정도의 리뷰수를 얻지는 못했다.

“The neatness of the solution is all the more satisfying for the mess this once was: as the last piece slots into place, the sense of closure for player and protagonist feels as earned as it is overwhelming.” 9/10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개최된 gamescom latam 행사에 Best Narrative Award 후보로 선정되어 초청받았지만 직접 참석할 수 없어 대리 전시를 요청했다.

2016년에 ‘레플리카’도 같은 부문에 후보로 초청된 적이 있었지만 그때도 장거리 여행과 경비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대리 전시를 선택했었다. 만약 내 다음 게임이 있다면, 다시금 수상 후보작으로 선정될 수 있다면 꼭 한 번 직접 찾아가 전시하고 남미의 개발자들과 게이머들을 만나보고 싶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했던 팬들로부터 게임에 대한 감상이 담긴 메시지를 여럿 받았는데, 브라질에서 주로 한국의 연예계 소식과 팝 문화를 보도하는 매거진 ‘HIT!’에서도 행사장에서 내 게임을 플레이한 후 이메일 인터뷰 요청을 보내왔다. 덕분에 해당 매체의 공식 사이트에서 Somi를 검색하면 가수 전소미님에 대한 기사들 사이에 내 인터뷰 기사가 빼꼼 등장한다.


7월 21일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BitSummit Drift에서 Excellence in Game Design Award를 수상했다.


8월 18일 부산 BEXCO에서 개최된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 2024′(BIC Festival 2024)에서 심사위원상(Jury Prize)과 소셜 임팩트(Excellence in Social Impact)상을 수상했다.


9월 12일 일본 게임 매거진 패미통(ファミ通) 크로스리뷰에서 33점을 받아 ‘Gold 전당'(ゴールド殿堂)에 입성했다. 패미통에서 Gold 전당 입성 기념 샴페인과 메달을 보내주셨고 ‘미제사건’ 스위치 버전의 일본 퍼블리셔인 Playism에서 이를 받아 보관하던 중 11월경 개발자 컨퍼런스인 IDC 참석을 위해 일본에 방문했을 때 전달받아 아내와 함께 마시며 조촐하게 늦은 기념 파티를 했다.


9월 19일 ‘미제사건’이 Playism의 도움으로 닌텐도 Switch로도 출시되었다. 닌텐도 Indie World에서 ‘미제사건’의 소개영상을 직접 제작해 주셨는데 차분하면서도 깊이있는 성우분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알아 듣지도 못하는 일본어 영상을 계속 반복해서 재생하며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출시 직후 ‘미제사건’은 일본 다운로드 랭킹에서 4위에 오르는 기염을 보였다. 컴퓨터 마우스 조작을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이고 내가 직접 이식을 위한 UI개선 등의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조작의 편의성이나 기기와 게임의 플레이 방식간 밀접성과 같은 부분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Playism과 닌텐도 Indie World의 구성원들이 보여준 아낌없는 지원, 그리고 작품을 사랑해주는 팬분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9월 26일 일본 게임 대상 2024(Japan Game Awards 2024)가 개최되었고 Game Designers Award 부문에서 ‘미제사건’이 Cocoon과 함께 선외가작(Honorable Mention)으로 발표되었다.

시상은 일본의 유명 게임 디렉터인 사쿠라이 마사히로(Masahiro Sakurai)님께서 해주셨는데, 이분의 음성을 통해 내 게임의 제목을 듣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일본 게임 대상’은 사전에 심사대상으로 선정되기 위해 지원하는 구조가 아니었고 별도로 행사 주최측으로부터 통보를 받은 적도 없었기에 이 행사에서 내 게임이 언급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행사 당일 나는 도쿄에서 TOKYO GAME SHOW 전시 직후 개발자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쏟아지는 축하 메시지에 당황해서 허겁지겁 라이브 영상을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9월 27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TOKYO GAME SHOW 2024(TGS 2024)에서 인디게임 부문 Best Game Design Award를 받았다.

인디게임에 대한 TGS의 시상식은 Sense of Wonder Night (SOWN)이라는 별도의 이벤트에서 진행된다. 다른 게임쇼 시상식과는 달리, 수상 후보로 선정된 개발팀들이 게임 아이디어에 대한 피칭 이벤트를 진행하고 이벤트에 참석한 심사위원과 관객들이 현장에서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 일본 게임계의 거장들을 심사위원으로 모시고 게임 피칭을 하는 경험은 처음이었고 영어로 진행되는 발표였기에 더욱 긴장했다. 준비한 발표자료의 화면을 넘기지 않아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못한 진행이었지만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게임의 전반적인 모티브와 구성에 대해 효과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도쿄게임쇼 4일간의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는 Silent Hill 시리즈의 프로듀서인 Motoi Okamoto님께서 직접 부스에 방문해 주었던 사건이었다. 내 게임을 모두 해 보았다고, 특히 ‘더웨이크'(The Wake)를 좋아하신다고, 게임에서 죄책감을 다루는 능력을 높이 산다고 말씀해 주셨다.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번역기를 동원해서 나눈 대화였기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수 많은 플레이어들이 열광하는 게임 시리즈의 감독이 보여준 호의에 깊은 감사와 감동을 느꼈다.


10월 19일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SXSW SYDNEY 2024에서 Discovery Award를 수상했다.

수상후보라는 통지를 받았을 때는, 이미 일본 BitSummit과 TOKYO GAME SHOW 참석을 위해 연차를 연속해서 사용한 상황이었고 SXSW 직후인 11월에는 중국 WePlay에 참석할 계획도 있었다. 전시일정과 비행시간을 고려할 때 일주일가량 소요되는 호주 행사까지 가는 것은 직장인으로서 지나친 욕심이라는 생각에 직접 참석할 수는 없었다. 대신 ‘RP7’을 제작한 ‘터틀크림’의 선용(Sun Park)님께서 시상식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해주었고 게임의 전시도 도와주었다.

이후 12월경 선용님께서 상패를 전달해 주려고 부산까지 직접 와서 연락했는데, 당시 나는 계엄과 관련해서 엄중한 시기를 겪는 통에 모든 소셜미디어를 비공개 전환하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차단한 상태였다. 계엄이 해제되고 여러 달이 지나 정국도 내 심리적인 격랑도 모두 안정된 이후에야 다시 선용님과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그간의 두문불출을 사과하긴 했지만(얼버무리고 넘어갔지만), 선용님의 선의와 우정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던 몇 개월이 참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결국 상패는 이듬해 8월이 되어서야 우리집 수납장에 안착했다.


11월 10일 국제 독립 게임 축제인 IndieCade에서 Narrative Award를 수상했다.

2016년 출시한 ‘레플리카(Replica)’가 동일한 행사에서 동일한 부문의 상을 받은 적이 있었기에 IndieCade Narrative 부문에서만 두 번째 수상이었다. 근래 IndieCade는 ‘Anywhere & Everywhere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주된 행사를 온라인을 통해 진행하고 있지만, 2016년 당시에는 미국 LA에 소재한 USC에서 오프라인 전시와 시상식을 진행했었다. 내게 처음으로 미국에서 게임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수상의 영광까지 안겨 주었던 축제인 만큼 금번 ‘미제사건’의 수상은 더욱 감회가 남달랐다.

시상식 다음날 전체 수상자들이 화상을 통해 모여 축하를 나누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온라인 이벤트가 있었는데, 나는 시차문제로 인터뷰 시각인 새벽 6시경 출근 중이었고 부득이 운전하면서 문답을 이어나갔던 기억이 난다. 영광스러운 자리이고 아카이빙되는 영상인만큼 다른 수상자들처럼 프로다운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만약 나에게 세 번째 수상의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기필코 턱시도를 입으리라.


11월 16일부터 17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WePlay에 Best Overseas Game 부문 수상후보로 선정되어 초청받았다.

WePlay 운영진으로부터 행사 하루 전날 진행되는 CiGADC 컨퍼런스에서 ‘미제사건’의 포스트모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SXSW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직장 내에서 계획된 연차를 변경하고 추가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가 번거로운 탓에 거절하고 전시행사에만 참석했다.

중국에서 개최되는 게임 축제 중 매년 상하이에서 열리는 WePlay와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G-Fusion에는 여러 차례 초청받아 참여했고 매번 행사의 규모와 중국 팬분들의 환대에 놀라움을 느낀다. 중국 인디게임계와 맺은 인연의 끈은 2016년 출시작인 ‘레플리카(Replica)’에서 시작되는데, 출시 당시 지원 언어가 한국어와 영어 뿐이었던 내 게임을 높이 평가한 중국 인디게임 퍼블리셔 Indienova에서 무료로 중국어 번역을 해주고 중국 내 홍보도 도와주겠다고 제안을 했고, 이후 중국 내 영상 플랫폼인 bilibili와 소셜미디어인 Weibo 등에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면서 중국은 ‘레플리카’의 최대 매출국이 되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 Indienova의 구성원은 크게 변했고, 함께했던 이전의 멤버들 중 상당수도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났지만 중국에 갈 때면 언제나 함께 어울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11월 30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Indie Developers Conference 2024(IDC 2024)에 초청되어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 – 포스트모템’을 발표했다. ‘미제사건’의 플레이어 중 과반수가 일본분들이기 때문에 포스트모템을 처음 발표하는 곳이 일본이라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TGS에서 발표할 당시 동시통역이 이루어졌던 것을 기억해 1시간 분량의 영어 발표 내용을 준비했지만, IDC에서는 영어 문장을 말하면 일본어로 순차통역하는 방식으로 발표가 이루어졌다. 때문에 발표 시간이 줄어들어 준비된 내용의 1/3 정도만 이야기할 수 있었고 분량 조절을 위해 전달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맥락없이 넘어가야 하는 상황들이 계속 발생해서 당황스러웠다. 주최측과의 소통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내 실수였고 경비를 지원하고 외국의 개발자를 초청해준 분들과 귀한 시간을 내어 발표를 들으러 모여 준 일본의 개발자분들께도 면구스러웠다. 발표가 끝나고 ‘훌륭한 강연이었다’며 다가와 인사를 해주는 분들께도 연신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IDC 일정과 관련하여, 내게 주어진 ‘업무’는 단 한 시간의 발표 뿐이었고 이를 위해 2박 3일을 혼자서 도쿄에서 휴식하며 지내는 여유로운 여행이었기에 경비를 과도하게 지출하는 것이 왠지 이기적이라 여겨졌고 가족에게도 죄책감이 들었다. 이러한 쓸 데 없는 고민의 소치로 비싼 호텔방 대신 캡슐호텔을 예약했는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도에 ‘레플리카’를 전시하기 위해 BitSummit에 참가했을 때 처음 캡슐호텔을 사용한 경험이 있었고 그 깔끔함과 저렴함에 매료된 기억이 있기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이었지만, 당시의 나에 비해 지금의 나는 너무 늙어있었다. 사람들의 코고는 소음 속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운 후에야, 피로하고 짐 많은 노년의 해외여행객에게 캡슐호텔은 현명한 선택지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몸을 유지하는 것 자체에 돈이 많이 든다는 씁쓸한 깨달음이 밀려드는 시간이었다.


12월 2일 출시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스팀 리뷰 수가 5,000건을 넘어섰다. ‘미제사건’을 플레이하고 커뮤니티 허브에 찾아와 감상평을 남겨 주신 플레이어들에게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함이 스쳤다. 내 게임 중 ‘미제사건’이 유일하게 얻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라는 평가결과는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아니면 차기작에 대한 도전 정신과 아이디어를 가로막는 족쇄가 될까.


12월 17일 IGN JAPAN에서 2024년도 최고 게임을 발표했고, ‘미제사건’이 INNOVATIVE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평에 적힌 표현은 그 내용처럼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2~3시간 정도의 게임 플레이를 마치고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을 때, 등장인물들의 슬픔과 애틋함에 플레이어는 가슴이 먹먹해질 것입니다.

2~3時間程のゲームプレイを終えてすべての謎が解き明かされた時、登場人物たちが抱える悲しみと愛情に、プレイヤーは心打たれるに違いない。

――山田集佳


12월 26일 일본 게임 매거진 패미통(ファミ通)에는 일본의 게임업계 주요 인사들이 선정한 2024년도 ‘개인적’ GOTY가 발표되었다. Silent Hill 시리즈의 프로듀서인 Motoi Okamoto님께서 ‘미제사건’을 1위로 선정해 준 것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께서 내 게임을 순위에 올려 소개해 주었다.


해를 넘긴 2025년 1월 16일, 드디어 10년간의 인디게임 개발 과정에서 그토록 바라 마지 않았던 Independent Games Festival 2025(IGF 2025)의 수상 후보작 발표가 있었다. ‘레플리카’가 2017년도 IGF에서 Excellence in Design부문 선외가작으로 선정된 이력은 있었지만 이후 ‘리갈던전'(Legal Dungeon), ‘더웨이크'(The Wake)가 연이어 고배를 마시면서 IGF의 문턱을 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2025년 IGF에서, ‘미제사건’은 Excellence in Narrative부문 최종 수상후보로 발표되었고, Excellence in Design부문 선외가작(Honorable Mentions)으로도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당시까지 나는 GDC와 IGF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전 세계 게임 업계의 사람들과 내로라하는 게임들이 총망라된 공간임에도 여태껏 굳이 발을 내딛지 않았던 이유는, 거리와 경비라는 다소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행사의 ‘관객이 아닌 구성원’으로서 참여하고 싶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는 지도 모른다. 결국 IGF는 내 유치한 기다림을 어르듯 나에게 초청장을 보내왔다. 10년이라는, 그리 늦지도 그리 빠르지도 않은 시점을 정해서.

3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Moscone Center 내에 위치한 IGF Pavilion에서 ‘미제사건’을 전시했다. 전시된 작품들이 모두 IGF 수상 후보작들인 까닭에 주변에 함께 전시 중인 작품들 중 상당수가 익히 들어보았거나 이미 다른 전시회에서 만나 개발자들과 어울린 경험이 있는 게임들이었다. 내 게임 맞은 편에는 Excellence in Visual Art 부문 후보작이었던 Nine Sols가 전시 중이어서 자연스럽게 Red Candle Games의 Henry와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Devotion 출시 이후 발생했던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혀 다른 장르의 새로운 게임으로 도전해 인기를 구가하는 모습에 감탄과 존경을 담아 인사했다.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싶었던 개발자들이 많았다. 당신의 게임이 큰 영감을 주었노라고,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구상했느냐고 묻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부스를 돌아다닐 때마다 재채기처럼 뿜어져 나오려고 했지만 외향적이지 않은 성격과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마음처럼 쉽게 다가가긴 어려웠다. 그래도 ODDADA라는 앙증맞은 게임을 만든 Sven, Bastian과 친해질 수 있었으니, art of rally를 만든 dune과 초밥을 먹을 수 있었으니, 오랜 친구들과 동료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맥주 한 잔 부딪힐 수 있었으니,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시상식은 3월 19일 GDC Ballroom에서 개최되었다. 같은 무대에서 우선 IGF Awards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연이어 GDC Awards 프로그램이 이어졌기에 게임업계 주류의 동향에 무관심한 내가 보기에도 유명한 사람들은 다 모인 공간같았다. 무대의 화려함과 주위에 앉은 유명 개발자들의 권위에 압도되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괜히 애먼 와인만 연거푸 마셔댔다. Balatro도 후보작 중 하나였기에 같은 테이블에 LocalThunk와 Playstack 식구들이 모여 있었는데, ‘미제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며 인사를 건네기에 당황스러웠다. 특히 ‘리갈던전(Legal Dungeon)’과 Golden Idol 시리즈의 형식에 대해 비교하는 통에 말문이 막힐 정도로 놀랐다. Playstack에서 내 차기작에 대한 퍼블리싱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는데, 파티장에서의 인사치레임을 알면서도 나는 이미 와인 몇 잔으로 불콰한 김에 헛된 희망의 구름 속을 한참 떠다니고 있었다.

결국 Excellence in Narrative 부문 수상의 영광은 Caves of Qud에게 돌아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상 소감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되뇌었던 짧은 시간이 겸연쩍었지만, 이 공간까지 도달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욕심부리지 말자고 생각하며 헛헛한 마음을 달랬다.

‘미제사건’은 ‘내 인생 마지막 게임’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에 절실함과 간절함을 품고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 직장과 창작의 꿈, 두 가지 선택지로 이어진 갈림길에서 결국 직장으로 향한 길을 택했다는 의미였다. 그렇기때문에 ‘미제사건’이 보여준 여러가지 성과들은, 창작활동을 마무리하고 직장생활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시점에 잘 어울리는 아주 근사한 엔딩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IGF 전시를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직장 사무실로 출근한 나는 내 마음이 이미 재작년에 선택을 마쳤던 그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 있음을 느꼈다. 내 머리채를 잡아 채고 고민의 원점으로 다시 끌고 간 그 무엇이 아마도 IGF 행사장 어딘가에 있었겠지, 싶었다. 화려한 공간과 빛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던 짐승이 제 주제를 잊은 탓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결국 IGF는 내게 영광과 번뇌를 동시에 안겨준 멋지고 위험한 경험으로 남았다.


IGF를 끝으로 ‘미제사건’의 전시 일정은 모두 마쳤다. 이후 ‘미제사건’을 포함하여 지난 10년간 게임을 만들어온 창작여정과 개발 철학을 소개하는 자리를 몇 차례 가졌는데, 평범한 부산 아저씨의 지껄임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가져 줘서 의외였다.

2025년 4월 15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Unite 2025 행사에서 ‘당신의 이야기, 당신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메시지보다 더 아름다운 게임’이라는 내 모토가 잘 전달되었기를 뒤늦게나마 바라본다.


5월 23일 일본 비디오게임 미디어인 ‘전격 온라인'(電撃オンライン)에서 주최하는 ‘전격 인디대상 2025′(電撃インディー大賞 2025)에서 ‘미제사건‘이 어드벤쳐 부문 4위, 종합 순위 6위를 달성했다.


5월 25일 킨텍스에서 개최된 PlayX4 행사장에서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 포스트모템을 발표했다. 일본 IDC에서 발표한 이후 국내에서도 한번쯤 포스트모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랐는데, 마침 경기콘텐츠진흥원 측의 요청이 들어와서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시간대를 달리하여 같은 날 초청된 다른 연사로는 ‘민트로켓’과 ‘데브시스터즈’ 소속 직원분들이 있었다. 강연 전체의 테마도 ‘게임산업 트렌드 특별 강연’이었던 터라 내 존재와 강연 주제에 대해 다소 위화감이 들었지만, 강연을 마친 후 인사하러 와준 팬분들의 응원 덕분에, 멀리서 내 강연때문에 새벽부터 출발했다는 이야기 덕분에, 그래도 이런 시간을 가지길 잘 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미제사건’이 데려가 준 곳, 선물해 준 경험이 정말 많았음을 새삼 깨닫는다.

게임을 만드는 과정은 창작의 즐거움으로 나를 신나게 하고, 게임을 전시하고 게임을 통해 교류하며 소통하는 과정은 내가 재능있고 개성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해주어 행복하다. 결국 게임은 처음 구상하는 순간부터 플레이하고, 출시하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까지 단 한 순간도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 외에 다른 나쁜 것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지난 마지막 블로그 글 이후에 참석했던 몇 개의 게임 축제 참가 경험을 뒤늦게라도 정리해서 게시하려고 했는데 적다 보니 ‘미제사건’의 여정 전체에 대한 기록이 되었다. 아마도 다음 블로그 글은 올해 A MAZE./Berlin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이야기 정도일텐데, 그 이후에는 한동안 개발자 ‘소미’로서 전할만한 이야기가 없을 듯하다.

그래서 소망한다. 빠른 시일 내에 내 블로그가 새로운 게임의 devlog로 채워질 수 있기를. 새로운 여정이 다시금 시작되기를. 내 고민이 어떠한 방향을 향하건 두 갈래의 길이 완전히 끊어져 있지는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