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웨이크(The Wake) 출시를 앞두고…

“젠더에 대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리갈던전을 출시한 후 새로운 게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게임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다음 주제는 명확하고 단호했다.

‘주류’ 또는 ‘정상’으로 규정된 범주에 속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 게임을 통해 사람들이 ‘다수자’라는 권력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인터뷰와 자서전, 소설과 영화, 게임을 찾는 과정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후천성 인권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승호 저)에서 이혁상 감독님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분의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을 찾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게임을 위해서 나와 다른 이들의 범주를 정하고 그들을 대상화하는 것은 아닐까. 이해하고 공감하고 연대하지 않은 내가 만든 게임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앨리슨 백델의 “펀 홈”을 읽을 때쯤 질문했던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누구를 대변하려는 거냐’라고. 아버지를 회고하며 정체성을 확립해나갔던 저자처럼, 어쩌면 내가 먼저 드러내고 공감해야하는 드라마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처럼 두려움으로 인해 논리를 상실한 사고가 이어지던 과정에서,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저)은 나에게 ‘에니그마(Enigma)’라는 독특한 소재를 알려주었다.

결국 “펀 홈”의 가족사, 그리고 장례식. 독일 나치의 “에니그마”는 나에게 의도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게임을 보여줬다.

더 웨이크(The Wake)는 이렇게 출발했다. 겁이 많아 원하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내 안으로 숨으면서, 다른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 게임의 소재만 탐닉하며.